부동산일반정책/부동산·경기-동향

‘시장 역주행’, 부동산 ‘거품’ 인위적 떠받치기

모두우리 2008. 10. 22. 11:10
728x90

정부가 21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은 부동산 경기와 건설업체 살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토공 등 부동산 관련 공공기관들을 통해 건설업체에 대규모 유동성을 지원하고, 투기적 수요까지 다시 끌어들여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한다는 게 정부 대책의 뼈대다. '가계 주거부담 완화'라는 명분도 내세웠지만, 서민 주거복지 확대나 실수요자의 주택 구입비용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 고강도 처방의 배경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부동산 시장 침체와 이에 따른 금융권 파급 위험은 상당히 심각하다. 미국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같은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주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부동산 경기침체가 이어져 건설업체들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대부분 건설사들의 재무상황을 보면, 정상적인 영업활동에서는 나가는 돈이 들어오는 돈을 초과한 지 오래다.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낫다는 대형 상장건설회사들조차 유동성 위기에 놓일 정도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부동산과 건설업 실물부문의 어려움을 방치했다간 곧바로 금융권 부담으로 옮겨져 실물과 금융의 동반부실로 이어질 위험이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건설사 유동성 위기가 해소되면 다시 건설 투자가 살아나 고용과 내수 등 경기 전반을 진작시키는 효과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정부 대책의 효과는 제한적일 듯

정부가 대대적으로 공공자금을 쏟아부으며 건설사 구제에 나서면 당분간 대량 부도 사태는 피할 수 있다. 또 이번 10·21 대책으로 참여정부 때 만들어진 부동산 투기 억제책이 대부분 허물어진 만큼 공격적인 주택수요도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시장에선 집값이 앞으로 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시장 상황에선 공급과잉 상태가 이어지고, 건설사들로서는 재고 누적에 따른 자금난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대한주택보증이 2조원을 들여 미분양 주택을 사주더라도 많아야 1만5천채 정도다. 공식적으로 16만채의 미분양 주택을 가진 건설업체들한테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국내 집값은 수요자들의 구매 능력을 한참 벗어난 수준에 있다는 게 문제다. 국민은행 집계로는, 지난해 우리나라 주택구입자들의 연소득 대비 주택구입가격비율(PIR)은 전국 평균 6.6배, 서울은 11.6배, 강남권은 12.3배에 이른다. 유엔 정주권회의가 제시한 적정 비율 3~5배를 웃돌고, 특히 서울은 뉴욕(2006년 기준, 7.9)과 런던(6.9), 도쿄(5.6) 등 세계 주요 도시들에 견줘 훨씬 높다. 집값이 너무 부풀어올라 수급 균형을 맞추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정부도 이번 대책을 내놓으며 "미분양 문제는 공급과잉과 고분양가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며 건설사들의 철저한 자구노력을 촉구했다.

■ 또다른 부작용 나타날 수 있어

공공자금으로 건설사들의 미분양 주택이나 토지를 사는 것은 시장 왜곡을 초래한다. 정부와 업계가 강조해 온 '시장원리'에 맡겨두면 땅값과 집값이 저절로 내려갈 텐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떠받쳐 건설사들로 하여금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를 배경으로 건설사와 금융회사들이 집값에 잔뜩 거품을 끼게 해놓고서 터질 지경에 이르러서는 고통을 시장과 사회에 떠넘기는 꼴이다. 참여연대 김남근 민생희망본부장(변호사)은 "결국 서민 복지를 희생양 삼아 투기를 조장하고 건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쓰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주택보증과 신용보증기금을 통한 건설사 지원은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 정작 공적 보증을 받아야 할 계층의 수혜기반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가령 주택보증의 가용자금 3조8천억원 가운데 지급준비금 1조8천억원을 뺀 실질 가용자금 2조원을 미분양 주택 매입에 써버리면, 건설사 부도에 대응하기 힘들 수 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주택보증 본연의 기능은 건설업체 부도 때 입주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정부 대책은 건설사를 살리기 위해 분양계약자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