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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가 아프다]“솔직히 부모님이 말을 많이 걸어줬으면 좋겠어요”
- 11월24일 밤 신촌 뒷골목 경향신문
- 입력 2011.12.14 22:01
- 수정 2011.12.15 09:56
- 11월24일 밤 10시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뒤편 주택가. 경향신문 '10대가 아프다' 취재팀은 신촌 일대를 취재하던 중 가출한 10대 4명을 만났다. 조현용군(16·고교 1년 자퇴·이하 모두 가명)과 중학교 3학년 박승규·이정호·한민우군(15)은 건물 한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정호군의 여자친구도 있었다. 아이들은 술을 마신 상태였다. 취재팀은 왜 이들이 밤늦은 시간에 신촌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조현용 = 동생들이 부모님에게 혼나서 제가 형이어서 같이 있어주려고 왔어요. 저는 학교를 안 가도 되거든요. 전 자퇴했어요. 교복 줄이는 것도 안되고, 머리 기르는 것도 안되고, 학교도 집에서 멀고 그래서 자퇴했어요. 아빠한테는 공부해서 집에서 가까운 데로 복학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에 원서 내고 왔어요.
- 교복과 머리에 왜 이렇게 민감하죠? 자퇴까지 할 일인가요?
- 청소년들이 지난 12일 밤 서울 신촌의 한 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조현용 = 평범한 애들이야 여자도 안 만나고, 시내도 잘 안 나가고 맨날 공부만 하니까 쪽팔린 게 없는 거 같아요. 나는 그런 공부 같은 것도 못하니까 교복이랑 머리라도 괜찮아야지 안 그러면 여자애들한테 쪽팔려요.
- 여자애들이 머리가 이상하다고 해요?
조현용 = 여자들은 아무 말 안 하는데 나 자신이 쪽팔린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냥 학교에서 두발, 복장, 등교시간 같은 거 마음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 고민상담은 누구에게 주로 하나요?
조현용 = 친구에게 털어놓아요. 솔직히 지금 나이 때는요. 저도 그렇고 제 친구도 그렇고 친구가 가장 소중한 거예요. 가족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노는 애들 중에는 상종 못할 애들도 있지만 진짜 친구로 생각되는 좋은 애들도 있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문제아처럼 여겨지는데 처지가 비슷하다보니 서로 의지하게 돼요.
정호가 여자친구와 인근 편의점 옆에 설치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얘네 섹스한다!"고 소리쳤다.
- 말려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경우가 종종 있나요. 여자친구와 관계를 하는?
박승규 = 기회는 많은데 하면 안돼요. 쟤네도 그런 거 아니에요. 아빠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저도 그런 짓 안 하려고요. 아빠처럼 안 하려고 해요. 도박도 안 하고, 여자도 안 만나고. 사실 제가 전과가 있어요. 폭행 하나, 절도 하나. 폭행은 학교 애 하나를 30분 동안 때렸어요. 뒤에서 제 욕을 했거든요. 그 이후로 학교에 안 나갔어요. 절도죄는 오토바이 하나 훔쳐 탄 건데 그냥 친구들끼리 있다가 심심해서 스트레스 풀려고 오토바이를 훔쳐다 차가 없는 도로에서 역주행을 한 거예요.
- 아빠가 어떠신데요?
박승규 = 제가 세 살 때 엄마랑 이혼했어요. 엄마가 날 버리고 갔어요. 한 번 버렸으면 자식이 아니죠. 그년(엄마)도 잘 살고 있어요. 아빠가 도박을 했는데 한 달에 버는 돈이 없어요. 다 도박으로 써버려서. 아빠랑 이야기는 자주 해요. 아빠가 도박 앞으로 안 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해요. 아무리 그래도 전 친구보다 아빠가 소중해요. 전 아빠한테 '철 좀 들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싶어요. 친구들한테는 '갈 때까지 가보자'고 말하고 싶고, 선생님한테는 '편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 담배 피운다고 선생님이 금연학교 보냈어요. 일주일 동안 금연학교에 있었는데 진짜 X 같아요.
고교 1학년의 연상 여자친구와 화장실에서 나온 정호는 대뜸 욕을 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정호 =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짜증나게 시비조로 말해요. '너 차라리 집을 나가라. 밥 좀 축내지 말라'고 해요. 중학교 1학년 이후로 별 이유도 없이 이런 말을 해요. 처음에는 조금 슬펐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흘려 넘겨요. 그런 말만 듣다보니 집에 그냥 들어가면 엄마에게 '말 걸지 말라'고 하고 문을 닫아버려요. 공부 잘하는 누나한테는 그런 말을 안 해요. 누나 말은 전부 다 믿고, 해달라는 건 다 해줘요.
저한테 들어가는 건 100원도 아까워하죠. 그런데요. 엄마한테 소리치며 말 걸지 말라고 했지만 솔직히 엄마가 말을 많이 걸어줬으면 좋겠어요. 시비조로 말하지 말고요. 아버지하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항상 자기 말이 맞다고만 하고 매부터 드세요. 그러고요. 학교도 진짜 개X 같아요.
- 왜요?
이정호 = 짜증나게 해요. 뭐해라, 뭐해라. 꼭 명령하는 것 같아요. 뭐 안 하면 맞는 거고, 욕하고…. 부모님이야 한 달에 대여섯 번 이야기하는데 그냥 학교나 잘 나가라고 말해요. 학교 다니기 싫은데.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정호는 유급 상태다.
이정호 = 전 진짜 선생님한테 다른 애들에게 유급만은 절대 시키지 말아달라고 하고 싶어요. 솔직히 쪽팔리잖아요. 학교 안 나가서 유급 받았는데 한 살 어린 애들하고 학교 다니면 진짜 짜증나요. 진짜 선생님들이 힘들게 해요. 말 안 들으면 때리고 욕하고….
언어폭행이라고 하잖아요. 욕먹으면서 학교 다니기 싫었어요. 저 중학교 1학년 때는 착했는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몇 달 학교를 안 갔어요. 한 명이 가출하면 다같이 나가요. 리더 격인 애가 있어요. 걔가 '답답하다'고 하면 그 밑에 있는 애들도 따라나가는 거예요. 집이 편해야 학교도 나가고 하는데 부모님 눈치만 받다보니 학교도 나가지 않게 됐어요.
민우는 가출한 지 이틀째 됐다. 지난밤은 용인의 한 찜질방에서 보냈다.
한민우 = 4만원 들고 이틀 전에 나왔어요. 돈 떨어지면 물류센터나 홀서빙 같은 데서 하루씩 일해요. 오는 데 차비만 만 원 들었어요. 오늘도 찜질방에서 잘 거예요. 술은 방금 빌라 지하에서 먹고 나왔어요. 저 술 먹고 담배 피우고 해서 공부를 안 했어요. 중3인데 이제 고등학교 가려고 하니까 후회되죠. 며칠만 이러다 집에 들어가야죠. 우리 부모님은 제가 집을 많이 나가서 별로 걱정 안 해요. 아빠는 '고등학교만 잘 다녀라'라고 말씀하세요.
- 일진이에요?
한민우 = 아뇨. 이진이에요. 싸움은 중간 정도 해요. 있잖아요. 애들 이야기 듣다가 저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부모님들도 자기 청소년 때는 그랬으면서 '뭐뭐 하지 말라'고만 해요. 아이들 잘되라고 하는 소리지만 알아서 철드는 거지, 하지 말라고 해서 철드는 건 아니잖아요. 아빠는 담배 피우면서 저한테는 피우지 말라고 하고 그러면 좀 안 좋죠. 아빠부터 끊으면 제가 끊는다고 했는데 아빠도 끊는다고 해놓고 안 끊어요. 아빠랑 자주 이야기해요. 아빠는 저보고 '나쁜 씨앗은 심지 말라'고 해요. 전 학교에 흡연구역을 만들고 싶어요. 어차피 뒤에서 피울 건데. 그리고요. 선생님들 옷 같은 거 보면 자기들은 XX… 좋은 양복 입으면서 우리더러 교복만 입으라고 그러고 그러면 안되죠.
- 이러면 행복해요?
한민우 =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그냥 공부 못한다고 해도 평범한 애로 돌아가고 싶어요. 중학교 1학년 때는 반에서 4등도 했어요.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어요. 다시 공부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지만 지금은 되돌리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담배 피우고, 싸우고…. 제가 저지른 게 있잖아요. 주워 담기 힘들어요. 저랑 노는 애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요.
그나마 하는 생각이 군대 가서 말뚝 박을 생각 정도고요. 그냥 공부 잘하는 애들이 제일 부러워요. 우리도 말로는 '지금부터 공부하자'고 해요. 그런데 말뿐이에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쁜 걸 알면서도 친구 때리고 '삥' 뜯는 애들은 습관이 된 거예요.
- 세상에 뭐가 소중한 것 같아요?
한민우 = 친구가 짱이죠. 그거 말고 솔직히 두려운 건 없어요. 친구들이 나를 멀리하면…. 그게 두려운 거겠죠.
■ 특별취재팀
=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재덕·이혜인·배문규 기자
< 특별취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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