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민형사, 취업/생활정보

[10대가 아프다]“어른들이 경쟁사회 만들고 잔소리해요, 놀고 싶어요” - 경향

모두우리 2011. 12. 15. 16:54
728x90

 

[10대가 아프다]“어른들이 경쟁사회 만들고 잔소리해요, 놀고 싶어요”

11월26일 밤 목동 학원가

경향신문 | 입력 2011.12.14 22:07 | 수정 2011.12.15 09:56

 


11월26일 밤 11시. 서울 목동 학원가는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려는 아이들로 붐볐다.

경향신문 '10대가 아프다' 취재팀은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독서실로 가던 중학교 2학년 김지현양(14·이하 학생 이름은 모두 가명)에게 말을 걸었다.

- 시험공부는 잘돼요?

김지현 =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요. 잘 안돼요. 제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열심히 안 하는 것처럼 보이나봐요. 엄마는 저보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대요. 근데 엄마랑 서로 때리면서 장난칠 정도로 친해요. 아빠랑은 바둑, 오목도 두고요. 그래도 부모님께 제 고민을 털어놓지는 않아요.

- 친구들 관계는 어때요?

김지현 = 저는 애들이랑 잘 지내는 편인데 학교 애들을 보면 힘이 세거나 노는 애들이 약한 애들만 골라서 심부름을 시키거나 아무 이유 없이 때리기도 해요. 옆에서 볼 때면 때리지 못하게 하고, 돈도 빼앗지 못하게 하고 싶어요. 노는 애들은 그런 애들이 노페(노스페이스 점퍼)를 입는다고 빼앗기도 해요. 그걸 인터넷에 올려 팔기도 하고…. 제가 힘이 세져서 막아주면 좋겠지만 괜히 나섰다가 까일 수도 있어서 못해요. 그런데 왕따랑 가까이 지내면 자기 수준이 낮아 보일까봐 애들이 안 놀아줘요. 학교 애들을 보면 노는 애, 평범한 애, 공부만 하는 애, 찐따로 구분하는데 찐따랑 놀면 찐따가 되는 거예요. 못생긴 애들이랑 놀면 다른 애들이 '너 왜 저런 애랑 놀아?'라고 그래요. 남자애들이 여자애들한테 인기 있으려면 잘생기기만 하면 돼요. 공부는 상관없고, 운동은 좀 상관있어요.

최은혁(14·중2년) = 전 최근에 여자친구와 헤어졌어요. 딱 하루 사귀었는데 걔가 남자친구는 부담스럽다고 해서…. 그게 요즘 고민이에요.

- 고민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최은혁 = 고민은 친구들한테 이야기해요. 선생님과는 거리감이 느껴지고 엄마, 아빠한테는 쑥스럽고 그래서요. 그런데 선생님은 이상하게 저와 다른 애들을 차별해요. 다른 애들이 자면 '한번 봐준다'고 하는데 내가 자면 수행평가 점수를 깎아요. 필기점수와 수행평가 태도점수가 합해져서 성적이 나오는데 부모님이 태도점수가 낮다고 걱정을 하세요.

박준용(14·중2년) = 저는 성적이 계속 떨어져서 고민이에요. 부모님은 '분발하자'고 격려하시는데 저는 그냥 스트레스만 받죠. 저는요. 어른들에게 경쟁사회를 만들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비교당하는 게 싫어요. 그것도 주로 학교 성적을 가지고…. 부모님에게는 잔소리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냥 어른들에게 '좀 닥치세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이 심하죠?

중학교 졸업반인 김고은양(15)은 고교입시 원서를 낸 상태다. 그래도 여전히 학원을 다닌다. 고등학교 수업 준비, 즉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다.

-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를 일찍 봐서 힘들었죠?

김고은 = 이번 시험기간 막바지에 힘들었어요. 고등학교 입시시험은 다 끝났고, 원래는 12월 중순쯤에 기말고사를 봐야 하는데 우리는 고교입시 때문에 모든 진도가 10월 말~11월 초까지 마쳐야 했거든요. 특히 외고를 준비하는 애들 때문에 수업진도 맞추기가 어려웠어요. 걔네들은 입시를 준비할 때 내신성적기록표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학교 시험을 더 빨리 봐야 해요. 선생님도 힘들고 저희도 힘들었죠. 사실 저희 언니가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저에게 거는 기대가 좀 커요. 그런데 공부도 해야 하고,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야 하잖아요. 그 균형을 맞추는 게 힘들었어요. 내가 공부할 때 두는 관심사랑 애들이랑 놀면서 갖는 관심사가 다르니까 힘들었어요. 전 학교활동도 많이 참여하고 싶었는데 여유가 나지 않았어요. 제가 하고 있는 과학동아리에서 이번에 과학축전을 나갔는데 우리 부스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과학 체험활동을 하도록 도와야 했어요. 500명 정도가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물까지 갖춰야 했어요. 토·일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했고, 금요일에는 학교 끝나고 3~4시간 정도 했어요. 보람은 있었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공부도 같이 해야 하니까. 엄마는 일찍 집에 들어오라고 하는데 거기 찾아온 사람들을 상대 안 하고 그냥 갈 수 없으니까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 부모님과는 잘 지내요?

김고은 = 엄마랑은 많이 친해요. 아빠랑은 별로예요. 맞벌이를 하시니까 대화할 시간이 많지는 않고, 친구들하고 지내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엄마, 아빠랑 약간 서먹하긴 해요. 대화도 주로 엄마는 '요즘 이 기간이 제일 중요하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시죠. 아빠랑은 별로 대화를 안 해봤어요. 아빠는 그냥 좀 어려워요. 그래도 집안에 한 명쯤 엄한 분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래야 질서가 잡히고 그런 거잖아요. 화가 나도 아빠 앞에서는 수그러들기도 해요. 나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아요.

- 친구들과 다투기도 해요?

김고은 = 제가 1학년 때는 공부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런데 2학년이 되니까 노는 애들도 많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그런 분위기에 맞춰가야 하는 거 있잖아요. 근데 제가 고지식한 면이 있어 애들이 불편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원래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때 스키니진도 처음 입어보고, 놀이공원도 같이 가고 했어요. 그래서 성적이 떨어진 건지는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친구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해요. 제가 사실 2학년 때 노는 친구들이 너무 이해가 안돼서 공부사이트에 상담 글을 올려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대학생 언니가 '너는 공부를 잘하니까 공부가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다른 중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답글을 달아줬어요. 그때 좀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친구들은 겉모습이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다른 것이 삶에서 더 중요하다 느낄 수 있겠구나' 했죠.

자정 가까이 되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요약해준 프린트물을 손에 들고 표정 없이 학원차에 올라탔다.

- 공부 힘들죠?

이근철(15·중3년) = 우리가 하는 게 단순 암기잖아요. 당연히 재미없죠. '이게 아니면 안돼'라는 식으로 틀에 박힌 것을 외우고 있으니까요. 제가 살고 싶은 스타일대로 살고 싶은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3년은 공부밖에 없죠. 아빠가 엄격하셔서 공부 외의 것을 못하게 하고 '공부만 잘하면 뭐든 해도 된다. 그런데 네 성적으로는 대학도 못 간다'고 하시니까 우선 공부를 해야 해요. 성적이 늘 고민이에요. 1·2학년 때는 부모님한테 사귀던 여자친구랑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다 했었는데 이제는 많이 줄었어요. 아빠랑 이야기하면 공부 이야기만 해야 하니까. 대화하는 게 어색해요. 그게 싫어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안 만들려고 해요. 공부 이야기만 하면 지겹고 싫증나니까.

- 그래도 꼭 해야 할 말은 있게 마련이잖아요?

이근철 = 사실 아빠와 선생님에게 '놀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요. 친구들한테도 '놀자'고 하고 싶어요. 일주일에 노는 시간이 합쳐봤자 5시간이 안돼요. 집에 있는 건 노는 게 아니니까…. 영화 보는 거나 자전거 타는 것 등은 절대로 안돼요. 사실 200일 정도 사귄 여자친구랑 얼마 전에 헤어졌어요. 제가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여친이 '이제 너도 고교 준비해야 하니까 공부에 전념해서 나중에 좋은 사람 만나라'고 말했어요. 조금 아쉬워요. 영화도 보고 이대 가서 여친 옷 사는 거 따라가고 그랬는데…. 그래도 참아야 해요.

■ 특별취재팀 =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재덕·이혜인·배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