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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가 아프다]“무리 안에 속하기 위해 ‘빵셔틀’도 군말 없이 감수” - 상담사가 말하는 ‘또래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 -경향

모두우리 2011. 12. 16.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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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가 아프다]“무리 안에 속하기 위해 ‘빵셔틀’도 군말 없이 감수”
 
상담사가 말하는 ‘또래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입력 2011.12.15 21:38
|수정 2011.12.16 00:01
- '또래 스트레스'란 용어는 낯선데요.

오혜영 한국청소년 상담원 조교수 = 미국의 심리학자 로런스 콜버그에 따르면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아이의 도덕성이 타율에서 자율로 바뀝니다. 이전까지는 부모나 교사의 말을 타율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진리라고 인식하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의 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 거죠. 중학교 1~2학년 때는 또래의 힘을 자각하는 시기라고 봐요. 부모보다는 또래의 말에 영향을 받고, 그들에게 인정을 받느냐 아니냐가 중요해지는 거예요. 하지만 또래관계 역시 매우 복잡하고 어려워요. 이건 뭐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예쁘다고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뭔가 조금만 엇나가도 극단적으로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거예요. 따돌림을 받는 거죠. 그러면 아이들은 불안감이 생겨요. 이 시기에는 친구가 절대적이거든요. 친구들과 친해지지 않으면 불안해요. 또래에 대한 욕구가 커서 내 친구 누가 다른 친구랑 더 친한 것에 질투하고 그런 식의 많은 갈등을 하게 돼요. 남자아이들은 조금 다른 특징이 있는데 학교성적, 덩치, 힘 같은 부분에서 미묘한 역학관계에 얽혀들어요. '일진'이 있는 학교의 경우 힘없는 아이와 힘있는 아이로 구분되는 구도도 생겨요. 이 모든 것을 또래 스트레스로 분류할 수 있죠.

10대들은 부모보다 또래에게 인정받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서울 신당동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한 상담사가 상담관찰기록지를 작성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10대에게 친구가 중요한 존재인가요.

김병관 한국청소년 상담원 복지개발실 팀장 = 물론이죠. 친구관계 때문에 죽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로 10대에게는 또래집단이 가장 중요해요. 청소년기에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자율성과 동질성이에요. 자율성은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말하고, 동질성은 또래집단에서 한 구성원으로 속해 있는 것을 말하거든요. 아이는 한 집단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껴요. 실제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혼자 밥먹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어떤 그룹에 소속돼 있지 못하다는 것은 그 시기 아이들에게 있어서 당연히 갖춰야 할 '능력'이 결여된 것으로 평가되니까 엄청 중요하죠.

- 아이들이 또래 스트레스를 받는 주요 원인은 뭔가요.

김병관 = 아무래도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때죠. 청소년의 자살 사유 중 학업 스트레스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또래 스트레스예요. 물론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친구에게 배신당했다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10대 아이들에게는 그게 자연스러워요. 아이들에게 무리 안에 속한다는 건 '생명'과도 같은 가치를 지니거든요. 잘 이해 안 되시죠. 예를 들어 '빵셔틀'을 당하는 아이도 마찬가지예요. 아니 '빵셔틀(약한 아이가 힘센 아이들에게 빵·담배 등을 사다 바치는 행위)'을 당하면 선생님한테 일러바쳐서 안 그러도록 하는 게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내가 속한 무리 속에서 강한 아이가 '야 빵 좀 사와라'했을 때 약한 아이는 반항하지 않고 복종함으로써 그래도 외부세력으로부터 보호받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는 거예요.

이윤조 서울시 청소년 상담지원센터 팀장 = 물론 또래집단의 영향을 받는 아이들 사이에도 강도 차는 있어요. 굳이 또래집단에 속하지 않아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기 생활을 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 시기의 아이들은 친구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해요. 심지어 늘 전화하던 친구에게 전화나 '카톡'이 오지 않으면 '나는 필요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특히 소위 일진 아이들의 소속감 강도가 높아요. 이런 아이들은 소속력이 강한 곳에 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거거든요. 또래집단에서 껄렁거리는 것을 자신감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자존감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단에 귀속되려는 심리가 강해지는 거죠.

이영선 팀장 = 특히 여학생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크게 나타나요. 학교 쪽도 취재해보셨어요? 실제 대부분의 여중·고생은 그룹으로 다녀요.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따로 다니는 아이는 정말 소수에 불과해요. 예전에 상담했던 아이 중 대인관계에 문제를 겪었던 한 아이는 자기가 속하게 될 그룹의 여자애들 숫자를 센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하니까 '애들 수가 7명이나 9명으로 홀수가 되면 짝이 맞지 않아 결국 자기가 혼자 지낼 수도 있기 때문'이래요. 어른들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부분에서 아이는 두려움을 느끼는 거예요. 그룹 내 문제를 보면 여자애들 속에서도 리더격이 있어요. 그 아이가 중심이 돼 잘 지내는 그룹도 있지만 리더가 주도해 '왕따'를 만들거나 괴롭히는 경우도 있어요. 여자아이들은 상대를 폭력으로 괴롭히는 게 아니라 '관계'로 괴롭혀요. 그러니까 '병주고 약주고' 식인데, 평소에는 아무 일 없이 같이 노는 것처럼 하다 중요한 상황에서는 왕따를 시키려는 학생 한 명만 쏙 빼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왕따를 당한 그 아이는 혼자 괴로워하면서 고민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주변 누구도 따돌림의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아요. 아이는 계속 괴롭죠.

부모·또래와의 갈등은 혼자서 해결하기가 쉽지않다. 15일 서울 신당동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한 상담사가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참 이해가 안 되네요. 좀 싸울 수도 있고, 다른 친구를 사귀어도 될 일인데요.

이영선 팀장 = 최근 상담한 아이는 리더가 싫어서 자기와 마음이 맞는 애 한 명과 함께 그 그룹에서 나가겠다고 했대요. 그랬더니 리더가 그 아이를 따로 불러서 '너 앞으로 각오하라'고 말하더래요. 그걸 보고 같이 나가기로 했던 애가 리더에게 착 달라붙어서 '얘가 억지로 나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거짓말을 하고, 자기는 그룹에 다시 남기로 했다고 하더래요. 자기는 그 상황이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어른들이 봤을 때는 애들끼리 좀 지지고 볶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하겠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상황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걸 선생님이나 학부모에게 털어놓으면 어른들은 기자님처럼 '다른 친구들을 찾아보면 되지 않느냐. 다른 즐거운 수단을 찾아봐라. 혼자서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봐라'는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죠.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기존에 같이 밥 먹고, 수다 떨던 친구들을 떠나 혼자 밥을 먹게 되는 큰 일을 겪게 되는 거예요. 기자님 때도 그랬을 텐데요. 아이들은 밥도 꼭 그룹끼리 모여서 먹어요.

-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무슨 특징이 있나요.

김병관 조교수 = 또래집단에서 밀려나는 경우는 보통 그룹 내에서 '잘난 척한다'고 낙인찍혔을 때 많이 발생해요. 본인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은연중에 '나는 너희보다 무엇무엇이 더 낫다'고 언급하면서 상대를 비하하거나,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면 당하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분이 나쁘죠.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학교를 다니는데 뭐가 잘났다고 잘난 척을 하나 싶어지는 거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아이가 한두 명이면 그 둘 사이만 나빠지지만 반 전체가 박탈감을 느끼면 그 아이는 왕따가 되는 겁니다. 또 다른 유형은 그 집단 내 리더격인 아이가 내부의 한 명을 따돌리는 경우 그 밑에 있는 애들은 이유도 모르고 그냥 리더를 따라 행동하기도 해요. 잘난 척 티도 안 내고 그냥 학교생활을 잘하는 아이인데도 집단의 리더인 아이가 일부러 깔아내리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건 소위 노는 그룹의 리더 입장에서는 그 친구가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 자기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여기니까 괜히 왕따라는 방식으로 흠집내기를 하는 거예요. 어리숙한 아이도 따돌림의 대상이 돼요. 지능이 떨어지거나 판단력이 떨어지는 아이는 놀려먹기 좋으니까 재미삼아 골탕먹이기를 하는 거예요. 고약하죠.

- 왕따당하는 애는 학교 가기 싫겠네요.

김병관 조교수 = 당연하죠. 그래서 따돌림당하는 아이들은 등교거부를 하거나, 부모님께 전학을 보내달라고 하기도 해요.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거예요. 아이가 맞은 흔적이 있거나 솔직하게 부모에게 모두 털어놓으면 부모가 빨리 조치를 취하겠지만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누구에게 맞았다는 것 자체에 수치심을 느껴 부모나 교사에게 말을 하지 않으려 해요.

■ 특별취재팀

=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재덕·이혜인·배문규 기자

< 특별취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