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민형사, 취업/생활정보

[10대가 아프다]“자살시도 아이, 자기 말을 부모가 진심으로 듣자 마음 바꿔” - 경향

모두우리 2011. 12. 16. 00:49
728x90

 

[10대가 아프다]“자살시도 아이, 자기 말을 부모가 진심으로 듣자 마음 바꿔”
상담사가 말하는 ‘죽고 싶어하는 아이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입력 2011.12.15 21:38
|수정 2011.12.16 00:01
- 매년 자살 청소년이 늘고 있습니다. 청소년 자살에 특징이 있나요.

이영선 한국청소년 상담원 통합상담지원실 팀장 = 청소년 자살의 특징은 성인과 달리 자살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물론 우울증을 앓는 청소년의 비율이 매년 올라가는 것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살을 택하는 아이들은 우울증과 같은 병리적 상황에 의한 자살보다는 충동적인 측면이 강해요. 실제 청소년 자살자의 주변을 조사해보면 '아이가 힘든 줄은 알았지만 죽을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죠. 청소년은 전형적인 자살징후를 보이지 않는 경우에도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한 가지 원인으로 파악하기에는 학업 스트레스, 가족갈등, 교우관계 문제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것들이 섞여서 발생하기 때문에 딱 떨어지게 '이것 때문에 자살을 택했다'라고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워요. 그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죠.

- 다른 고민 해결 방법이 있을 텐데 왜 자살을 택하는 것일까요.

이영선 팀장 = 자살을 선택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어요. 그중 가장 지지를 얻고 있는 이론은 '스트레스 해결 방법의 상대성' 이론이에요. 청소년이 일단 성인에 비해 스트레스에 취약한 부분도 있고,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인지적 조망'이 좁아져요. 세상에 자기 문제밖에 안 보이는 거죠. 인지적 조망이 좁아지면 미래에 대한 생각을 못하게 돼요. 어른들처럼 '이것만 벗어나면 희망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크게 보면 다른 해결 방안도 있을 수 있는데 자기가 보기에는 죽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죽어버릴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인지적 조망이 좁아지는 데는 반드시 비합리적인 사고가 개입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시험을 못 봤다고 가정해 봐요. 그 아이는 '이제 끝이야'라고 생각하게 돼요. 그게 바로 비합리적인 사고죠. '시험은 절대로 잘 봐야 하는 것이야, 못 보면 안돼'라는 흑백논리를 가지고 있으면 아이가 힘들어져요. 시험을 못 본 것도 분명히 아이의 인생에서 하나의 실패로 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내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알려줘야 해요."

- 10대 대부분이 인지적 조망이 좁을 텐데 모두가 어려움을 겪을 때 자살을 떠올리지는 않잖아요.

전연진 한국청소년 상담원 드림스타트 사업지원단 팀장 = 물론 그렇진 않죠. 하지만 매체의 영향 때문에 요즘 아이들은 학업이든 진로든 애매한 상황이 닥치면 쉽게 자살로 연결시켜요. 물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인지적 조망이 넓어져요. 경험하게 되는 게 많아지니까요. 실험을 해보면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2까지는 자살생각이 증가하다 중3에서 고3까지는 줄어들어요. 이상하죠? 학업에 대한 부담이 늘면 자살생각이 늘 것 같은데 고3으로 갈수록 오히려 자살충동이 줄어든다니까요. 학업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학업을 따라가거나 포기하는 등 아이들 스스로 자기 나름의 대처를 하면서 자살률이 완만히 떨어지는 거죠. 고등학생쯤 되면 인지적으로 다양한 조망이 이뤄지는 것으로 풀이해도 돼요. 대신 고학년이 될수록 자살시도 시 성공률은 높아져요. 보고 들은 게 많다보니 다양한 자살방법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죠. 진짜 죽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니까요. 반면 어릴수록 자살 성공률은 높지 않아요.

- 겨우 10여년을 산 아이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데요.

이영선 팀장 = 우리가 청소년 상담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상담자 집단과 청소년 집단에 각각 '내 목숨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봤어요. 그랬더니 청소년들은 대부분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대답했어요.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생명을 상대적으로 쉽게 생각하는 거죠. 한마디로 내 목숨을 내 의지대로 하는 것이니 합당하다는 논리예요. 아이들이 자기 생명에 대한 존중감이 결핍돼 있는 이유는 핵가족화·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인해 양육 자체가 부실하게 이뤄지는 것도 원인으로 작용하는 걸로 보고 있어요.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고, 가족이라고 해도 가깝지가 않은 거죠. 유대관계를 맺을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나 하나쯤 없어진다고 해서 누가 눈 하나 깜짝하겠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게다가 아이들은 누구의 조언을 듣기 전에 이미 판단을 내려버려요. 그래서 낙담과 자기 비관이 극단에 이르면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가족은 자살의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고, 보호요소가 될 수도 있는 셈이에요.

- 가족보다는 아이팟 같은 전자제품을 더 가깝게 여기는데 이런 것도 자살과 관련이 있나요.

이영선 팀장 = 자살시도를 막기 위해서는 가족들이나 친구들과의 유대관계가 중요해요. 자살을 생각해봤던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 얼굴이 생각나서' '기르던 개나 고양이가 생각나서' 마음을 돌렸다는 말을 많이 해요. 여기에 큰 의미가 있는 거예요. 다시 살게 하는 데는 누군가와의 관계·관심, 그 끈이 중요한 거예요. 자살예방교육을 할 때 아이들에게 '네가 너를 즐겁게 하는 방법을 아니? 너를 칭찬하는 방법은 무엇이니?'라고 질문을 해요. 여러 가지 방법이 나오는데 그중에는 잠을 잔다는 아이도 있고, 음악을 듣는다는 아이도 있어요. 세숫대야에 물을 담고 그 물을 쳐다본다는 아이도 있었어요. 어떤 방법이 됐든 그 종류가 다양한 아이들일수록 자살의 위험이 낮아져요. 요즘은 교사를 상대로도 자살예방교육을 시키고 있어요. 예전에는 시도도 하지 않았고, 청소년 자살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도 꺼려했었거든요. 그런데 교사연수과정에 자살예방교육이 들어간 것 자체가 인식의 변화가 있는 것이니까 고무적인 일이라고 봐요. 하지만 학교에서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 자살을 막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방비 상태예요. 선생님들이 학생의 자살을 막는 방법은 어렵지 않아요. 결석을 몇 번 하면 그냥 전화로 안부라도 물어보면 돼요. 아이는 '아 누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구나'라고 여기는 것에서부터 살 힘을 얻는 거거든요. 사소한 것에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그마저도 못하는 교사들이 있어 안타깝죠.

- 뭐니뭐니 해도 가족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이영선 팀장 = 부모도 자신들이 어떤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어요. 예전에 고2 남학생이 인터넷 중독과 자살시도 문제로 찾아왔는데 부모가 '우리 애를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가'를 묻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바뀌어야 아이가 바뀔 수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감격스럽죠. 그런 부모는 자식을 바꿀 준비가 된 부모예요. 부모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센터에서 많은 대화를 했어요. 아이는 자기의 말을 부모가 진심으로 듣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뀌기 시작했어요. 아이는 인터넷을 할 때나 자해를 할 때 부모가 화내고 괴로워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꼈는데 이제는 대화를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배운 거예요. 아이 부모가 나중에 상담소를 다시 찾아 하는 말이 아이가 상담소를 나서면서 자기 손을 먼저 잡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부모 자식 간에 손을 잡는 일일 뿐인데도 그 부모에게는 그 자체가 감격인 거예요. 자기는 그게 그렇게 크게 와 닿았다고 하더라고요. 상담은 16회에 걸쳐 비교적 장기간 이뤄졌었죠. 피드백 차원에서 석 달 뒤 아이 상황을 확인해보니 아이가 전교 5등 안에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성적이 올랐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는 데 급급했던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해냈다는 게 고무적인 거죠.

■ 특별취재팀=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재덕·이혜인·배문규 기자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