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민형사, 취업/생활정보

[10대가 아프다]“공부보다 공부 강요하는 부모 때문에 힘들어해요” - 경향

모두우리 2011. 12. 16. 00:55
728x90

 

[10대가 아프다]“공부보다 공부 강요하는 부모 때문에 힘들어해요”
 
상담사가 말하는 ‘학업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입력 2011.12.15 21:38
|수정 2011.12.16 00:01
경향신문 기획 '10대가 아프다' 취재팀은 10대의 고민과 좌절 실태를 파악하고 심층적 진단을 하기 위해 오랫동안 청소년 상담을 해온 전문가 9명을 집중 인터뷰했다.

- 학업 스트레스는 저도 겪었던 거라 공감이 가네요.

배주미 한국청소년상담원 인터넷중독 대응 TFT 팀장 = 아마 기자분(어릴) 때보다 지금 아이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클 걸요? 상담을 해보면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지만 의외로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아요.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아이인데 불안장애로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있었고, 충분히 준비를 했는데도 강박증처럼 걱정하고 그러다보니 효율성이 떨어지게 되죠. 그건 부모로부터의 스트레스예요. 학업으로부터 스트레스가 발생하기보다는 부모와의 관계갈등이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거예요. 학업 스트레스는 공부에 대한 부담 그 자체로 발생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이건 좀 위험한 발언이기도 한데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했다고 하는 경우 그 본질을 살펴보면 단순 학업 스트레스라기보다는 학업에 대해 주변, 특히 부모들이 보이는 기대 때문인 경우가 더 많아요. 학업으로 인한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이 학업 스트레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죠.

학생들의 학업스트레스는 학업보다는 학업을 강요하는 부모와의 갈등관계에서 비롯된다. 14일 서울 시내 한 고교에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는 겉으로 표시가 납니까.

김병관 조교수 = 강한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을 보면 충분히 공부했는데도 시험이 닥치면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져요. 책에서 봤던 것도 기억이 안 나고, 실수가 많아져요. 본인의 실력과는 아무 상관없이 시험을 망쳐버리는 거예요. '아는 건데 틀렸어'라고 말하는 아이들 있죠? 부모들은 아이가 덤벙거려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일종의 학업 스트레스의 현상이에요. 학업 스트레스는 신체반응으로도 나타나요.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 아이들 중에는 시험지를 받자마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도 해요. 펜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손을 덜덜 떨기도 하고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시험인데, 하나라도 실수했다가는 정말 큰일난다'라는 강압적인 사고 때문에 시험에 집중하지 못하는 거예요.

- 저도 (중고생 때) 시험 망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김병관 조교수 = 아이 입장에서는 성적으로 자기 인생 전체를 평가받고 있는 거예요. 성적이 조금이라도 나쁘면 대개의 부모는 아이에게 '너 이 성적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래'라고 다그치죠. 그 상황에서 아이는 성적과 자신의 존재가치를 동일선상에 놓게 돼요. 저학년일 때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시험 실수가 많아지거나 공부한 것에 비해 성적이 안 나오는 경우가 있죠? 이것도 학업 스트레스에서 오는 현상이에요. 상담을 하다 보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동기부여가 안되는 거예요. 부모님은 매일 공부를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공부를 하기는 하는데 '왜 해야 하나'에 대해 스스로 답을 얻지 못하는 거예요. 공부란 게 원래 재미없는 거잖아요. 거기다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왜 공부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학업 자체에 흥미를 잃게 되는 거예요.

- 배 팀장님께서 학업 스트레스는 여러 복합적인 것이 관련돼 있다고 하셨는데요.

김병관 조교수 = 네. 상담을 하거나 조사를 해보면 기본적으로 대인관계와 연관된 측면이 많아요. 그래서 상담할 때 학업 스트레스만 따로 떼어내 분석하기는 어려워요. 친구나 선생님, 부모와의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그로 인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성적하락의 요인이 되기도 하거든요. 게다가 일단 성적이 떨어지면 공부에 흥미가 떨어지고 그러면 부모님은 또 잔소리를 하고 이런 식으로 연쇄적으로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예요.

- 구체적인 상담사례를 소개해주시지요.

김병관 조교수 = 예전에 한 아이가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상담을 요청했는데 공부만 하려고 하면 잡다한 생각이 떠올라서 집중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는 스스로 성적 상위권 대학 정도는 갈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하는데 왜 성적이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이의 문제는 단순히 집중이 안되는 차원이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오는 피해의식에 있었어요. 보통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신다. 집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췄다'는 식의 말을 하게 되잖아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주변 친구들에 비해 자기 집이 못산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난 왜 잘사는 집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우리 집은 왜 이 정도밖에 안될까'하는 생각을 계속하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열등감으로 번지면서 공부만 하려고 하면 친구들과 했던 대화가 생각나는 거죠. 그럴 땐 학업부분에 대한 상담보다는 아이의 심리상태부터 풀어줄 필요가 있어요.

- 학업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나요.

김병관 조교수 =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인지를 알게 해주는 게 필요해요. 학교에서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조사를 하면 자신의 가치평가 기준이 죄다 성적 아니면 집안, 사회적 지위예요. 부모가 심어준 가치를 아이는 자신의 판단이라 여기고 일종의 세뇌가 되는 거죠. 괴로운 공부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을 아이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해요.

이영선 팀장 =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업을 중단했을 때 다른 대안을 생각해 볼 줄도 알아야 해요.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무조건 '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식으로 아이를 말리다 결국 본인들이 포기해버려요.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도 있지만 아주 드문 경우이고요. 가장 안타까운 점은 학업중단이 비행으로 이어진다는 거예요. 우리는 학업중단 학생을 '문제행동의 예비군'이 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4주 정도는 반짝 행복감을 느끼거든요. 하지만 그 이후에는 할 게 없는 거예요. 잠을 잘지언정 학교에서는 친구들하고 놀 수 있었는데 학교를 관두고 나니 모든 시간이 오롯이 내 것이 되다 보니 본인이 감당을 못해요. 그러면서 학교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진로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자퇴학생들과 어울리게 되는 거죠.

- 부모 역할이 매우 중요하네요.

배주미 팀장 =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의 연령대가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내려오더니 이제는 초등학생도 겪고 있어요. 문제는 부모들이 '내 아이의 진로는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있어요. 아이의 진로결정과 성공을 마치 부모의 목표로 생각하는 거죠. 저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부모가 아이를 몰아붙여서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입학하는 성공(?)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타고난 아이들이나 가능한 것인데 부모들은 '다른 집 아이도 성공했으니 우리 아이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를 일방적으로 억압하기도 해요.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를 상담해보면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이 돼 있어요. 아이에게 가장 많은 비난을 쏟고, 아이를 몰아붙이는 사람이 부모거든요.

- 초등학생마저 학업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건 좀 슬픈 일이네요.

오혜영 조교수 =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강한 학업 스트레스에 직면하는 시기가 초등학교 4학년부터예요. 학업의 내용이나 수준이 많이 바뀌어요.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그렇게 공부를 하지 않아도 수업을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었는데 4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부모도 한계에 부딪히고, 아이들도 더 이상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죠. 그런데 요즘은 유치원생도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요. 영어유치원이다 뭐다 해서 공부압박이 유치원 때부터 가해지거든요. 요즘에는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도 '세상 살기 힘들다'면서 한숨을 쉬어요.

■ 특별취재팀

=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재덕·이혜인·배문규 기자

< 특별취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