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유로권 지폐. © AFP=뉴스1
스콧 미너드 구겐하임 CIO 기고
"구조개혁 없이 화폐 순환속도만 떨어뜨려"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세계경제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 많은 중앙은행들이 밀어붙인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혹은 아예 정반대의 결과가 속출했다. 디플레이션 역풍이 불고 통화는 초강세를 보이며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그동안 통화정책에만 의존해 왔다. 더 많은 곳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더 깊은 영역으로 떨어뜨릴 태세여서 더 큰 왜곡이 우려되고 있다.
구겐하임파트너스의 스콧 미너드 글로벌 수석투자책임자는 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를 통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성장을 촉진하지 못할 것이라며 글로벌 유동성 함정이 더 위험해졌다고 평가했다.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낮추는 목표는 성장 촉진이다. 저금리는 예금자들의 소비를 촉진하며 자본이 좀 더 위험하지만 고수익의 투자처로 방향을 바꾸도록 한다. 금리인하는 또 기업과 가계의 대출 비용을 낮추는 것을 의도한다. 실질 금리가 낮아지면 통화 약세가 유도되면서 수출 경쟁력을 높여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하지만, 미너드 구겐하임 책임자는 FT 기고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비유하며 의도했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마이너스 금리는 경제 전반에서 돈의 순환 속도를 압박한다. 예금을 예치해도 이자는 커녕 보관료를 내는 상황이기 때문에 집안의 '매트리스' 밑에 쌓아두는 것이다. 지난 1분기 금값이 급등한 것도 마이너스 금리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미네르드 책임자는 "경제가 순환하지 않는 지점까지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화폐순환 속도가 떨어지면 디플레이션 압박은 높아진다. 경제 활동이 둔화하면 중앙은행들은 성장을 촉진하려고 돈을 마구 찍어내야 한다. 소비자들은 물가하락을 보면서 지출을 꺼리고 소비가 줄면 성장도 둔화할 수 밖에 없다. 또 디플레이션은 실질 금리를 끌어 올려 통화 강세를 유발한다.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를 떨어뜨리는 상황에서 통화 강세는 수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중앙은행들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책 수단의 여력이 부족한 이상 마이너스 금리 이외에 다른 뾰족수는 없다고 미너드 책임자는 진단했다.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전세계적 실험은 이례적인 수준이다. 전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미너드 책임자는 "통화정책은 근본적으로 순환적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구조적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정 및 규제정책이 성장을 지지하기는 커녕 대부분 억제하고 있다"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과 겹쳐지면서 현재 각국의 통화 및 재정 정책은 세계 유동성 함정을 더욱 악화하는 위태로운 조합"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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